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굴 제국 (문단 편집) === 건축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ajmahalmughal.jpg|height=28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Red_Fort_in_Delhi_03-2016_img3.jpg|height=28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907dd38c65ab3c52a645c61ab6ad566a.jpg|height=280]]}}} || || '''{{{#FFF 인도 건축의 정수라 불리는 [[타지마할|{{{#fff 타지마할}}}]]의 전경}}}''' || '''{{{#FFF [[델리|{{{#fff 델리}}}]]의 [[붉은 요새|{{{#fff 붉은 요새}}}]]}}}''' || '''{{{#fff [[라호르|{{{#fff 라호르}}}]]의 바드샤히 모스크[* 라호르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모스크]]로, 완공 당시에는 세계 최대규모의 모스크였다.]}}}''' || 가히 인도 역사상 최고의 발전을 이루어낸 분야이다. 무굴 제국 시기 들어서 인도의 건축 양식과 페르시아, 그리고 아랍에서 들여온 이슬람 건축 양식이 짬뽕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무굴 건축의 주요 특징으로는 백색 대리석과 적색 사암의 빈번한 사용,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극히 화려한 기하학적 문양의 사용, 4면으로 거대한 정원으로 둘러싸인 모스크들과 궁전들, 주 건물 앞에 세워놓은 압도적인 크기의 정문, '차트리(Chhatri)'라고 하는 지붕 모서리 등에 세워졌던 높게 솟은 돔 형태의 건축물들, 건물 벽면에 돌출된 폐쇄형 발코니를 의미하는 '자로카(Jharokha)' 등이 있었다. 또한 타지마할 등에서도 사용되었듯이 이중식 양파형 돔을 지어내는 등 건축 기술도 크게 발달하였으며 '잘리'라고 부르는 극도로 정교한 석재를 깎아 만든 창문을 달기도 하는 등 현대인이 봐도 경탄할 만한 기술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무굴 제국의 건축가들은 건물 못지 않게 이를 둘러싸고 있는 정원을 매우 중요시했다. 당시 이슬람식 정원에는 크게 3개의 풍조가 있었는데, 모래로 뒤덮인 사막 속에서 정원을 휴식공간으로 여겼던 아랍의 전통, 정원을 4개로 나누고 도보 등을 설치하여 사색의 공간으로 사용했던 페르시아의 전통, 정원을 휴식과 야영의 공간으로 보고 그 한가운데에 텐트 등을 설치했던 투르크의 전통이 모두 무굴의 정원에 녹아들어갔다. 덕분에 이 시기에 정원의 조경법과 배치법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이를 '차르바그'라고 하여 '무굴식 정원'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에는 천국에는 이를 둘러싼 4개의 정원이 각방위에 하나씩 존재한다고 나와있다. 또한 4개의 정원들이 서로 만나는 경계에는 생명의 상징인 물이 흐르고 있으며 이 물들이 서로 만나는 중심지가 바로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이며 축복의 근원이라고 여긴다. 이슬람을 신봉하던 무굴의 건축가들은 천국을 지상 위에 재현하겠다는 의미로 4개의 정원들을 핵심 건축물 주변에 동서남북 방향으로 1개씩 짓고 물길을 내었던 것이다.[* 타지마할의 경우 북쪽에는 정원이 없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는 타지마할 뒤쪽으로 흘러가는 강과 그 일대를 아예 하나의 정원으로 삼아버린 것이다.] 특히 초대 황제인 [[바부르]]는 습하고 더운 인도에 거주하면서 시원한 장소를 찾고자 했다. 바부르는 녹음을 가장 찾기 쉬운 정원을 도피처로 삼으면서 정복지 곳곳에 정원의 건설을 장려하였으며 샤 자한 대에는 폭포나 물길을 터서 심미적인 효과를 함께 내는 등 정원의 중요성이 더더욱 부각되었다. 무굴 건축의 정점을 알리는 건축물이 바로 그 유명한 [[타지마할]]이다.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이 건축물은 [[샤 자한]] 황제가 자신의 사별한 아내 [[뭄타즈 마할]]을 위하여 지은 것으로, 중앙의 돔의 크기만 높이 35m, 지름 18m의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면서 동시대 유럽인들의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타 왕국과 영국에게 모든 것이 털려버린 현재와는 달리 제국의 전성기에는 건물 곳곳에 [[에메랄드]]와 [[루비]], [[다이아몬드]] 등 값비싼 보석들이 수도 없이 박혀있었고,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는 등 그 호화로움도 이전의 건축물들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백색 대리석에 홈을 파낸 후에 그 홈 사이에 검은색이나 적색 대리석을 똑같이 깎아 채워넣는 등 섬세한 기법들을 사용했고, 앞서 언급한 잘리 기법을 활용하여 울타리나 창문들을 현대인들이 봐도 놀라울 정도의 정교함으로 깎아내는 등 무굴 건축 예술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 외에도 거대한 황궁인 델리의 붉은 요새와 아그라 요새 등이 지어지기도 했으며 [[후마윤]]과 [[악바르]]의 묘 역시 그 아름다움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샤 자한이 세웠던 샬리마르 정원, 아우랑제브 재위기에 만들어진 바드샤히 모스크 등은 [[세계유산]]에 지정되기도 했을 정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